국민 먹거리 가격을 건드린 담합
며칠 전 이 소식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건 단순한 기업 간 가격 싸움이 아니구나”였다. 밀가루는 라면, 빵, 과자, 국수처럼 일상식의 출발점에 가까운 원료다. 그래서 특정 품목의 가격이 흔들리면 최종 소비자 가격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사조동아원, 대한제분, CJ제일제당 등 7개 제분사의 밀가루 담합을 적발하고 총 6천710억4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담합 사건 사상 역대 최대 규모다.
이 사건이 더 무겁게 읽히는 이유는 시장 구조 때문이다. 7개사는 국내 B2B 밀가루 판매시장에서 87.7%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고, 사실상 과점 구조를 바탕으로 가격을 조율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이 이렇게 집중돼 있으면 경쟁이 아니라 합의가 가격을 좌우하게 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넓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공급사 몇 곳의 결정이 전체 흐름을 결정짓는 구조인 셈이다.
6년간 이어진 합의, 가격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반복성
공정위가 문제 삼은 기간은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다. 약 6년에 걸쳐 밀가루 판매가격과 물량 배분을 합의한 정황이 확인됐고, 그 횟수도 적지 않았다. 대형 수요처를 대상으로 한 공급가격·물량 담합 19차례, 중소형 수요처와 대리점 등 전거래처를 대상으로 한 공급가격 담합 5차례, 합계 24차례에 걸쳐 담합이 이뤄졌다고 한다.
나는 이런 사건을 볼 때마다 담합의 본질이 단순한 한 번의 가격 인상이 아니라는 점을 떠올린다. 가격을 한 번 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문제는 그 뒤다. 언제 올리고, 얼마나 올리고, 어느 거래처부터 반영할지까지 조율하는 순간 시장은 경쟁 기능을 잃는다. 이번 사건에서도 대표자급 회합과 실무자급 회합이 총 55회나 있었다고 한다. 위에서 큰 틀을 맞추고 아래에서 세부를 다듬는 방식이다. 꽤 조직적이다.
| 구분 | 내용 |
|---|---|
| 담합 기간 | 2019년 11월 ~ 2025년 10월 |
| 담합 횟수 | 총 24차례 |
| 회합 횟수 | 총 55회 |
| 과징금 | 총 6,710억4,500만원 |
| 관련매출액 | 약 5조6,900억원 ~ 5조8,000여억원 |
공정위가 가격 재결정 명령까지 검토한 이유
이번 조치에서 눈에 띄는 건 과징금만이 아니다. 공정위는 7개 제분사에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도 부과했다. 담합으로 왜곡된 가격을 다시 정상 수준으로 되돌리라는 취지다. 이 명령이 실제로 확정되면 2006년 사건 이후 20년 만에 다시 적용되는 사례가 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의미가 크다고 본다. 과징금은 벌금 성격이 강하지만, 가격 재결정은 시장 구조를 바로잡는 시정 조치에 가깝다. 쉽게 말해 “잘못된 값을 내고 끝내라”가 아니라 “그 값 자체를 다시 계산해라”는 뜻이다. 담합이 단순한 위법행위를 넘어 소비자 부담을 지속적으로 왜곡했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셈이다.
공정위는 향후 3년간 밀가루 가격의 변경 현황을 연 2회 서면 보고하도록 하는 명령도 함께 내렸다. 한 번 제재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후 변동 과정을 계속 들여다보겠다는 의미다. 이런 후속 감시가 있어야 담합이 다시 고개를 드는 일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원맥 가격과 시장 반응, 왜 인상은 빠르고 인하는 느렸나
밀가루의 원재료인 원맥은 사실상 전량 수입 의존 구조다. 그래서 국제 원맥 시세가 오를 때는 제조원가가 민감하게 반응한다. 문제는 그 반응이 시장 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뤄진 게 아니라는 점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원맥 시세 상승기였던 2020년~2022년에는 원가 상승분을 신속하게 판매가격에 반영하기 위해 인상폭과 시기를 합의했고, 반대로 2023년 이후 하락기에는 하락분 반영을 최대한 늦췄다.
이 대목이 소비자 체감과 직결된다. 공급 원가가 오르면 업체들은 빠르게 판매가를 올리고, 원가가 내려가도 가격은 늦게 내려간다. 나는 이런 구조를 볼 때 늘 비대칭성을 떠올린다. 상승은 즉시, 하락은 지연. 시장의 룰이 아니라 담합의 룰이 작동할 때 흔히 나타나는 패턴이다.
2019년 12월 대비 2022년 9월 판매가격 상승폭
제분사별 최소 38% ■■■■■■■■■■■■■■■░░ 38%
제분사별 최대 74% ■■■■■■■■■■■■■■■■■■■■■■■■■■ 74%
공정위는 담합이 시작된 뒤 2022년 9월 기준 밀가루 판매가격이 제분사별로 약 38%에서 최대 74%까지 상승했다고 밝혔다. 숫자만 놓고 보면 단순한 가격 조정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먹거리 가격의 기초가 흔들린 것이다. 라면, 빵, 과자 같은 제품은 원가 비중에 따라 최종 가격으로 전가되기 쉽다. 결국 소비자는 원재료 가격을 직접 사지 않아도, 그 영향은 생활비 형태로 돌아온다.
이미 한 차례 제재를 받고도 다시 반복됐다
더 씁쓸한 점은 이들이 처음 담합을 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제분사들은 2006년에도 담합으로 제재를 받은 전력이 있다. 그때도 가격 재결정 명령이 포함된 시정명령과 과징금이 부과됐다. 그런데 다시 같은 유형의 행위가 반복된 것이다. 규제가 있었는데도 재발했다면, 그만큼 기대수익이 컸거나 제재의 억제력이 부족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번 사건은 정부가 물가 안정 차원에서 보조금을 지급하던 시기와도 겹친다. 2022년 6월부터 2023년 2월 사이, 7개사는 471억원을 지급받고도 담합을 지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적 지원을 받는 동안 경쟁질서를 해친 셈이라서 공정위가 중대하게 본 이유가 분명하다. 나 같은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지원은 받고 가격은 같이 올렸다”는 인상이 강하게 남는다.
“앞으로도 밀가루와 같이 국민 생활과 밀접한 식료품의 가격 등을 놓고 이뤄지는 담합에 대한 감시를 보다 강화하고 법 위반이 확인되면 엄중히 제재해 나갈 계획이다.”
공정위는 이번 사건을 서둘러 처리했다. 통상 담합 사건 조사는 평균 300일가량 걸리는데, 이번에는 약 4개월여 만에 마무리됐다고 한다. 담당 과장을 포함해 5명이 태스크포스를 꾸려 진행했다는 설명도 나왔다. 민생과 직결된 품목인 만큼 대응 속도를 끌어올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공정위가 전원회의 심의가 끝나기 전에 사건을 공개 브리핑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나는 이런 사건을 볼 때마다 규제의 핵심은 처벌의 강도만이 아니라 재발을 어렵게 만드는 구조에 있다는 생각을 한다. 담합은 적발되기 전까지는 조용하고, 적발된 뒤에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시도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과징금, 시정명령, 가격 재결정, 보고 의무 같은 수단이 함께 가야 한다. 이번 조치가 단발성 경고에 그치지 않으려면, 이후 시장의 실제 가격 흐름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끝까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밀가루는 그저 가루 한 봉지가 아니다. 내 식탁 위 라면 한 그릇, 아침에 집어든 빵 한 조각, 야식으로 먹는 국수 한 그릇의 출발점이다. 그런 품목의 가격이 은밀한 합의로 흔들렸다면, 그건 시장의 기술적 문제를 넘어 생활비의 문제다. 그래서 이번 제재는 규모만 큰 사건이 아니라, 소비자 신뢰를 어디까지 훼손했는지를 되묻는 사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